어쨌든 이런 갱년기 증상은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어 폐경이 나타나는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부족한 여성 호르몬을 외부에서 보충해준다면 이런 증상을 완화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에스트로겐은 여러 가지 유사체가 발견돼 있었다. 천연 에스트로겐과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는 에스트로겐 유사 물질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러한 호르몬 대체 요법은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써왔을 정도다.
한동안 에스트로겐 보충 요법은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맹신되기도 했다. 갱년기 증상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가장 크게 호소하는 괴로움은 갑자기 이유 없이 얼굴에 열이 팍팍 차오르고 가슴이 가빠지는 답답함인데, 이러한 답답함을 누그러뜨려주고 골다공증도 막아주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혈관이 훨씬 더 좁고 작은데도 여성이 임신 중의 엄청난 혈류 증가를 견디고, 남성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이 훨씬 적은 이유 역시 에스트로겐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알려지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여성 호르몬 대체 요법을 처방받았다. 이후 에스트로겐 단독효과에 대한 약간의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과 병용 요법이 실시됐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많은 여성들이 호르몬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여성 호르몬 대체 요법이 만능은 아니다. 지난 2002년 7월, 미국 여성건강협회(WHI)에서는 갑자기 와이어스 사가 연구하고 있는 여성 호르몬 제제 프렘프로Prempro의 임상 실험을 중지한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에스트로겐 신화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금이 갔다. 인공 에스트로겐의 투여는 대장암의 감소나 고관절 골절의 감소에는 유익한 효과를 나타냈다. 참고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잇는 고관절은 다른 골절과 달리 생명에 위협을 준다. 고관절이 부러지면 꼼짝도 못하고 몇 개월간 누워 지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급격히 쇠약해지고 만다. 실제로 고관절 골절환자의 사망률이 10퍼센트 정도나 된다. 특히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겨울철 빙판에서 미끄러져 골절을 입은 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공 에스트로겐 투여로 유방암, 뇌졸중, 혈전증 등은 오히려 조금 높아진 듯한 결과가 나왔다. 2002년 7월 17일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프렘프로를 복용한 사람들은 가짜 약인 '위약' 을 먹은 그룹보다 심근경색은 29퍼센트, 뇌졸중은 41퍼센트, 정맥혈전증은 111퍼센트, 유방암은 26퍼센트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발표가 나간 이후,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받아오던 호르몬 대체 요법을 너도나도 중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갱년기 증상이나 골절보다 유방암이나 심장병이 더 무섭다. 여기에는 매스컴의 과대 보도도 한몫했다. 위에서 보듯 41퍼센트 증가, 26퍼센트 증가라는 수치는 자칫하면 여성 호르몬제를 먹는 사람들의 26퍼센트가 유방암이 발병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위약을 먹은 그룹에 비해서 증가한 숫자를 가리킨다. 위약 그룹에서는 1만 명 가운데 유방암 환자가 30명 발생했는데, 프렘프로를 먹은 그룹에서는 1만 명 가운데 38명이 발병했다. 따라서 늘어난 8명을 30으로 나누어 나온 숫자가 26퍼센트이지, 프렘프로를 먹은 사람들 가운데 26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유방암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역으로 이 말은 1만 명 가운데 나머지 9,962명은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1만 당 환자 수를 보면, 심근경색은 7명, 뇌졸중과 혈전증은 각각 8명이 늘었고, 대장암과 고관절 골절은 각각 6명, 5명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 숫자가 적다고 해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증가했다는 사실은 분명했기에 이 실험 자체는 중단됐다. 하지만 1년이 채 못 된 2003년 3월, FDA는 기존의 프렘프로보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함랑을 훨씬 줄인 저용량 프렘프로를 승인해주었고, 호르몬 대체 요법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여성 호르몬 대체 요법을 사용하는 것은 신체적 불편함을 해소시켜줄 뿐만 아니라, 폐경 이후 또는 수술로 자궁과 난소를 제거한 여성들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이는 나도 주변에서 직접 경험했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아가 확고하면 자신의 성적 가능성과 이성과의 차이를 더 쉽게 알 수 있고, 안정을 얻기 쉽다. 진정한 성역할을 뛰어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없애중성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적 정체성 위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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