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마누라. SF 단편선에 있던 짧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는데 특이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행성 이주가 보편화되고, 기계화된 농업으로 한 사람이 수백만 평에 달하는 농사를 짓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 하는 농부들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만든 것이 '채소 마누라'를 위시한 '재배하는 식물 여성이다. 농부는 채소 마누라가 다 자라자 뿌리에서 잘라내 집 안으로 들여온 뒤, 도망가지 못하게 발목을 묶어놓는다. 그리고 성욕의 대상과 화풀이 대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남자가 아무리 괴롭혀도 채소일 뿐인 그녀는 물이 흐르는 듯한 졸졸거리는 소리로 울기만 할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남자의 집착과 폭력은 점점 더 심해지고, 드디어 술에 취한 채 채소 마누라를 때리고 목을 조르던 농부는 결국 그녀의 줄기에 휘감겨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이제 그녀는 농부의 시체를 양분 삼아 여느 때처럼 햇볕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졸졸거리는 목소리로새들을 부르며 살아간다. 팻 머피는 SF라는 분야를 이용해 여성과 성 문제를 교묘하게결합한 작가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적 착취가 오랜 세월 세계 곳곳에서 지속돼왔기에 성은 21세기의 대표적인 화두다.
요즘 사람들은 성역할이 파괴됐다는 말을 많이 한다. 여전히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 같은 직업은 남자가 대부분이고, 유치원 선생님, 미용사, 간호사는 여성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과거 금남 금녀의벽을 허물어뜨리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남성은 자신의 여성성을, 여성은 자신 안에 숨어 있던 남성성을 추구하는 것을 꺼리지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몇몇 급진적인 사람들은 이제 남성과 여성의차이는 없다고 말하며, 성을 이분화하는 사람을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휩싸인 사람으로 치부한다.
나는 여성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그런일을 하고 있다. 과학이 좋아 이과를 선택했고 생물학을 전공했으며,가능한 한 모든 일을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길 좋아한다. 이런 건 흔히 '남성적' 이라고 일컫는 특징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때는 내 안의 여성성이 불거져 나오는 것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여성성은 왠지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사실도 잘 받아들이며, 남에게 의존하는데다가 변덕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자아에 대해 생각하고 가치관을 확립하면서, 그리고 억눌러도 절대 없어지지 않는 내 안의 여성성을 자각 하면서, 난 이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좀더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내게 아무리 남성적인 특성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으로서 지닌 남성적 성향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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